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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주저리주저리)

캐나다 토론토 적응기1

이제 시간날 때마다 지나온 날들에 대한 회상을 하면서 우리 가족의 토론토 적응기를 적어 나가보고자 한다.

 

우리가 학교를 다닐 때 사회시간이었던가?

토론토는 교육의 도시였다. 내가 이곳에 온지도 벌써 만4년이 지나고 있는데(209년 1월에 왔으니), 솔직히 208년 11월까지도 한국을 떠난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었다.

 

갑자기 아내가 캐나다 밴쿠버에서 스카웃하고, 나도 영어에 대한 고민으로 갑자기 결정해서 바로 티켓을 끊었으니,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준비한 것이 없이 왔다.

 

도착해서 2주만에 아내의 둘째 임신사실을 알았고, 직장을 그만두게 했고, 서류를 준비중이던 워크퍼밋도 취소하고, 나의 공부를 미루고 공사장에 뛰어 들었다. 맨처음 만난 것이 페인터 윤**사장님.

4월 눈이 채 녹기도 전에 페인트를 시작해 그렇게 관광비자 6개월은 지나갔다.

 

한국에서 가져 온 돈은 전혀 없었다. 6개월 연장 신청을 하고, 페인트 헬퍼로 반지하방에서 세 가족이 살았다. 그리고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아파트에서 둘째를 낳았다.

사실 둘째를 낳을 때 OHIP(의료보험)이 안되는 상황이었기에 막막 했다.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아기한번 낳으려면 보험이 안될시에는 수천만원이 든다는 소리에 기겁을 했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여행자보험도 들고 온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실낫같은 희망이 있었으니 '미드 와이프'라는 제도였다. 보험혜택이 안되는 이들이 거의 무료로 진찰받고 아기를 출산 할 수 있는제도였다.(미드 와이프는 차후에 한번 올려봐야겠다)

 

부랴부랴 알아보니, 너무 늦어서 안된다는 것이다. 막막했다. 일단 등록을 해 놓고 기다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병원은 가야하고, 패밀리닥터에게 가서 상황설명하고 우린 돈 없다. 아내가 임신이다.(참고로 여기서 별로 평이 안좋은 닥터j인데 우리는 도움을 많이 받았고 지금도 우리에게 참 친절하다) 그랬더니 돈을 안 받지 않았다.

 

또 산부인과를 갔다. Queen st. 였던가? 임선생님이라고 어느교회 장로님이시란다.

그분께도 우린 돈 없다. 하지만 임신이니 진찰은 받아야 된다 했더니 무료로 진료를 해 주셨다.

 

그렇게 그렇게 힘겹게 기다리는 가운데, 한자리가 났다고 정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 미드 와이프의 직원들, 정말 정말 짱이다. 친절하기는 하늘을 찌르고, 얼마나 많은 편의를 봐 주는지... 감동 감동 감동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오히려 의료보험 되는 이들도 일부러 미드와이프를 통해 출산을 한단다.

이거 땜시롱 원정출산 늘어나지는 않겠지???ㅋㅋ

 

우리는 그렇게 예쁜 둘째를 만나게 되었다.

 

다음에는 비자해결한 사건(?)을 써야겠다~